하나님이 보호하사 대한민국 만세

21년5월3일 유트브 나의 누님 김옥길박사 김동길

히요근 2021. 5. 3.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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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MZ9lvJjkMHw 김길용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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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r7M2B8oewm0

21-5-3 나의 누님 김옥길박사 김동길

지난 417일은 나의 누님이신 김옥길 탄생 100주년이었다. 그는 1921년 평안남도 맹상군 원남면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여학교를 마치고 상경하여 이화여자전문학교(, 이화여자대학교)를 일제 때 마쳤다. 그 후 스승이신 김활란 박사를 받들어 이화 여전에서 근무하다가 미국 오하이오 웨슬레안(Ohio Wesleyan University)을 졸업하고 돌아와 모교에서 줄곧 봉직하였다. 그리고 1961년에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으로 발탁되어 18년이라는 긴 세월 이화여자대학 총장으로 심봉 하였다..

우리가 태어난 맹산은 깊은 산골이었고 우리들이 태어났을 때 우리 아버님은 원남면의 면장이셨다. 그 뒤에 아버님이 시작하신 광산이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여 우리 가족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가난을 겪어야만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기독교적 신망이 돈독한 어머니가 계셔 우리는 행복하게 자랄 수가 있었다. 일제하에 이화 여전의 교장이던 김활란 박사는 멀리 평양에서 이화 여전을 찾아 서울로 온 김옥길을 많이 사랑하시고 그를 가까이하셨을 뿐 아니라 그에게 기숙사 사감이라는 중책을 맡겨 김옥길은 타고난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는 기숙생들의 그 많은 이름을 한 번 부르고 모두 암기하여 다음 날 저녁부터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그 학생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여 불렀으다 하니 놀라운 일이다. 5.16 군사혁명이 터진 뒤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믿었던 군사정권은 모든 대학들의 총장을 바꾸기로 결정하였고 매우 어지러운 때였지만 김활란 박사는 그의 탁월한 안목과 판단으로 젊은 김옥길에게 총장직을 넘겨주셨다.

이 글을 쓰는 오늘 나는 나이가 94세나 되었는데 그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고 많은 사람을 지켜보았지만 내 누님 김옥길 같은 사람은 없다. 우선 태어나기를 큰 인물로 태어났다. 어떤 일이라도 그에게 맡기면 해결이 된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만 해도 넌더리가 나는 그런 문제들이 김옥길에게 가면 척척 다 해결이 되었다. 공정무사한 천품을 타고난 그는 자기 이익이나 자기가 소속한 가족의 이익을 도모하는 적은 한 번도 없고 오로지 대의를 위하여 자기 자신도 희생할 각오를 가지고 철저하게 한평생을 살았다. 그가 있으면 집안에 걱정이 없었고 18년 동안 이화여자대학에 총장이던 때에는 학교에 아무런 근심이 없었다고 들었다. 그의 지도력은 하늘이 그에게 준 것이어서 아무도 건드릴 수 없었다. 그는 요즘 사회에서 만나기 어려운 거인이었다고 나는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