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6 예수님을 알자 펌 정리 요한복음 7:25-36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가라사대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28,29절)
시골농부 김 서방이 모처럼 서울에 가서 남대문을 보고 왔습니다. 그리곤 한 번도 서울에 못 가본 이 서방에게 남대문을 보았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서방도 남대문을 잘 안다고 하면서 “그 남대문 바닥에 깔린 돌이 너무도 반질반질하게 달아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서방은 “아니야, 이 사람아! 남대문 바닥은 돌이 깔려 있는 게 아니고 흙으로 되어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서방은 아니라고 남대문 바닥은 잘 다듬은 돌이 깔려있다고 우겼습니다. 김 서방과 이 서방은 서로 자신의 말이 옳다고 우기다가 결국은 남대문을 안 본 이 서방이 이겼습니다. 여기서 ‘남대문을 본 사람보다 안 본 사람이 이긴다. 는 말이 나왔습니다. 여러분도 대부분 남대문을 보셨을 텐데 누구 말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실제로 남대문의 바닥은 돌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흙으로 덮여 있습니다.
사람의 “무지는 순수가 아닌 죄”라고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호6:4)라고 말씀했습니다. 현대의 경제도 자본이나 노동력이 없어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이 없어서 망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지적소유권을 최고로 쳐줍니다. 알고 보면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생각이 부족해서 망하고, 경제적으로도 무식해서 망합니다. 어떤 신학자는 말했습니다. “죄는 한 가지뿐인데 그것은 무식이다.”라고. 사람이 진정 알아야 될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면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시면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 이니 이다.”(눅 23:46) 그렇습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무식의 소치입니다. 그런고로 꼭 알아야 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알기 위해서는 배워야 합니다. 말씀을 배워야 잘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알려면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삶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이 “예수님을 알자”입니다.
먼저 성도 여러분들에게 죄송스러운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이런 질문을 드리는 저를 널리 용서하시고 그 대답은 여러분 스스로가 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아십니까?” “아신다면 얼마나 아십니까.” 좀 황당한 질문을 드렸습니다. ‘아, 내가 예수 믿은 지가 얼만데 새삼스럽게 예수님을 아느냐고? 저 목사가 날 완전히 무시하는구먼.’ 아마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사전에 제가 죄송하다는 말씀으로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은 연륜이 우리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현재 나의 신앙생활이 문제입니다. 과연 믿음의 생활을 내가 잘 하고 있는가 하는 자기진단 내지는 자기검토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나의 모든 삶을 지켜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좀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오래 믿어왔는데 왜 그렇게 살고 있느냐?’고 하는 말씀입니다. ‘왜 그런 신앙생활을 하느냐’고 하는 말씀입니다. ‘내 신앙생활이 뭐 어떠냐?’고 반문하실 분도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런 분이 계신다면 저는 목사로서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아! 내가 정말 잘 믿고 잘 살아야겠다. 내가 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되겠다.’하는 생각을 갖는 분이 계신다면 바로 그 분에게 오늘의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알아야 바로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믿어야 잘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을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마귀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죄를 짓지 않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기도가 이루어집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복을 받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전도도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아는 것’은 지식적인 ‘앎’이 아닙니다. 관념적으로 예수님을 알자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체험적으로 알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나서 체험해야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변화되어 새 사람으로 거듭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런 사람의 삶의 모습을 보고 아 저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알자 힘써 하나님을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호6:3) 더 나아가서 아주 노골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6:4) 여기서 제사는 오늘날의 예배와 같은 것이며 번제는 예물과 같은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이 예배드리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예물을 바치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모르고서는 예배를 드려도 헛것이요, 예물을 바쳐도 받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아서 바로 믿고 잘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저는 오늘 이 짧은 시간에 예수님의 모든 것을 다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만 가장 중요한 것, 성도 여러분이 꼭 아셔야할 것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삶 곧 생활입니다. 셋째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과 승천과 재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유대인의 명절 중의 하나인 초막절에 유대 예루살렘에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시니 질투가 나서 괜히 시비를 붙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 공연히 이것저것 트집을 잡습니다. 당치도 않은 트집을 잡다가 트집이 안 잡히니 이젠 예수님을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일반 백성들의 반발이 무서워 예수님에게 감히 손을 못 대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합니다. “이는 저희가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저희가 아무 말도 아니하는 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줄 알았는가.(:25-26) 유대의 당국자들이 예수님을 참으로 그리스도인줄 알았더라면 괜히 트집 잡고 비판하고 시비를 걸지 안 했을 것입니다. 저들이 예수님을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바로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잘 모르니까 비판하고 트집 잡고 시비 걸고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한 것입니다. 모르는 것이 병입니다. 무지가 죄입니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자신들의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알려고도 안 했습니다. 고집이 세고 마음이 옹졸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알려고 안 합니다. 예루살렘 사람 중에 예수님을 조금 아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에 대해서 무식한 지도자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27) 예수님께서 성전에 서서 직접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를 밝히는 말씀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28,29)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셨고, 하나님에게서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사람마다 ‘어디서 왔는가 하는 출생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몸은 육신의 부모로부터 받았으나 영혼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어떻게 내 부모가 나를 조성하여 만들었고 어떻게 하나님이 그 순간을 포착하여 내 영혼을 넣어주셨는지 참으로 신비한 일입니다. 하나님과 내 육신의 부모님 사이에 절묘한 만남이 없었더라면 지금 나는 세상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출생보다 더 신비스러운 일이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처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어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믿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눅1:37)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하실 수 있는 신비스럽고 놀라운 일이 예수님의 탄생과 더불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처녀탄생을 알고 믿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입니다. 아무나 예수님의 처녀탄생을 믿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선택된 사람만이 예수님의 처녀탄생을 믿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처녀탄생을 믿습니까?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오. 예, 감사합니다. ‘아멘’ 하신 분은 복 받으신 분입니다. 기적 중의 기적이 예수님의 처녀탄생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세상에 태어나신 예수님을 믿으시고 구원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탁합니다.
2)다음으로 예수님의 삶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고 동생들을 돌보며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목수의 직업을 가지고 노동일을 하면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웃을 섬기며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복음을 가르치시며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를 불쌍히 여기사 병을 고치시며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며 사셨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의 삶은 표적을 많이 나타내는 사랑과 섬김의 삶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칭송이 자자했습니다. 본문 31절의 말씀을 보십시다. “무리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의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예수님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게 선한 일과 표적과 기사를 많이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으로 봐서 누구든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을 수 있도록 사셨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저와 여러분을 보고 ‘아, 하나님의 자녀답다! 예수 믿는 자답다!’고 칭찬하면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러지 못한데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신 모습을 알고 배워서 예수님처럼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3)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살아나심과 승천하시고 재림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과 재림에 대해서 아셔야 합니다. 본문 33절로 34절을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예수님이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에게 잡혀 빌라도에게 넘겨졌습니다. 그리고 아무 죄도 정하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의 죄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죽어야할 죽음을 예수님이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대신하셨다는 사실을 아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고 있습니까? 이 사실을 안다고요? 이 사실을 믿는다고요? 그러면 알고 있고 믿으면서 왜 그렇게 삽니까? 지금 여러분의 사는 모습이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의 생활입니까? 솔직하고 진실하게 자신의 생활을 돌이켜 반성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금요일) 죽으신 지 사흘 만(일요일)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죄악의 권세, 사단의 권세,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신 사실을 믿습니까? 부활의 사실을 실제로 알고 믿는 사람은 ‘부활신앙’으로 무장된 사람입니다. 부활신앙으로 무장된 사람은 질병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절망도 겁내지 않습니다.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부활신앙이 있으면 질병도 고치고, 절망도 극복하고, 죽음도 이길 수 있으니 세상의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매사에 자신감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는 일마다 다 잘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예수님의 사심을 알고 믿으면 참 부활신앙으로 무장되어 날마다 시간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며 사신 증거를 무려 열 한 차례에 걸쳐서 열 두 제자들을 비롯한 500명 이상의 성도들에게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로 올라가셨습니다. 하늘나라로 가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 삽나 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1-6)
하늘나라로 가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시면 우리를 부르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을 알고 믿는 성도에게는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약속입니다. 여기에 영원히 잘 사는 비법이 있습니다. 말씀을 배워야 삽니다. 말씀을 바로 배워서 예수님을 알아야 삽니다. 말씀을 잘 배워야 잘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처녀탄생과 삶과 십자가와 부활, 승천과 재림을 알고 믿어 영원히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18-1-5 펌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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