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8 예수님의 생애(예수님을 알자)
※예수의 생애와 기독(예수그리스도)교의 탄생 (퍼온 글)
○예수 그리스도
기원전 4년 예수가 탄생했다. 히브리어 ‘여호수아’를 그리스어로 예수라 하며 ‘야훼는 우리의 구원’이라는 뜻이다. 그 무렵 로마의 속주였던 팔레스타인에서는 외국의 지배에 시달려 온 유대인들이 민족을 구원해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기원전 8세기경 선지자 이사야가 “처녀가 잉태해 아기를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고 메시아의 탄생을 예언했기 때문이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의미다.
무엇보다도 기독교의 발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은 메시아사상이다. 메시아(Messiah)란 구세주를 뜻한다. 히브리어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말이다. 《구약》시대에는 예언자, 사제, 왕 등에게 성유를 붓는 관습이 있었다. 인류를 구제하기 위해 이 세상에 강림한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구세주라 해 ‘메시아’라 부른다. 메시아를 그리스어로는 크리스토스 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기서 유래한다.
당시 유대 왕국의 헤롯은 메시아가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에 두 살 이하의 아기는 모조리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다행히 아기 예수는 이집트로 피난 가 있었기 때문에 헤롯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목수였던 아버지 요셉은 예수가 세례를 받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예수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벽을 허물다
성장한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와서 설교를 하며 만민구원의 복음을 전파했다. 하나님 가르침의 본질인 ‘사랑과 박애와 평등’을 부르짖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하나님의 축복은 유대인에게만 유효했다. 그리고 사람이 병들고 어려운 것은 그가 지은 죄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는 이를 뒤집었다. 그가 말한 복음은 유대인이건 아니건, 사람이 병들건 건강하건, 위대한 사상가이건 어린애처럼 단순하건 간에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고 신의 사랑은 무한하다는 것이다.
그 무렵 모든 종교는 착한 사람은 상을 받고 죄 진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상선 벌 악’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이것도 뒤집었다. 죄 진 사람도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선포했다.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긍휼히 여긴다는 것이다. 정의가 아니라 신의 은총이 가르침의 핵심이었다. 따라서 신이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 듯 우리도 이웃에게 똑같이 베풀라는 것이다.
예수는 그를 통해 하나님을 믿고 회개하면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쳤다. “때가 이르렀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예수는 유대인인데도 배타적인 선민사상과 형식화된 율법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 무렵 바리새파가 주도하는 유대교는 신앙의 본질인 ‘사랑’보다는 율법의 형식에 얽매여 있었다. 예수는 율법의 자리를 ‘사랑, 믿음, 소망’으로 대치해 설파했다. 그건 혁명적인 선언이었다. 한마디로 그는 율법을 곧이곧대로 지키는 게 능사가 아니고, 하나님과 이웃을 등진 인간이 하나님과 이웃에게로 ‘돌아섬’을 강조했다.
예수는 십계명과 율법의 정신을 묻는 바리새파 질문에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복음22:37~40) 이렇게 십계명과 율법의 알맹이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 요약했다. 이는 신선한 외침이었다.
더구나 예수는 유대인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의 복음을 전파했다. 율법과 할례로 유대인만 선택을 받고 구원을 받는 게 아니라 율법과 할례 없이도 모든 인류가 그를 통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예수가 전한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온갖 고통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그가 외친 하나님 나라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누르는 자도 눌린 자도 없는’ 그런 나라였다. 그의 사상은 율법의 기본정신인 정의와 평등을 지향하는 것이었
그의 가르침은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멸시를 받고 손가락질 당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제사장이나 율법학자들처럼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 들지 않고 신분이 낮은 비천한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려 먹고 마셨다. 그런가하면 부와 권력을 믿고 위세를 부리는 자들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유대교는 태고 때부터 메시아가 출현해 모든 인류를 구제한다고 하는 사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다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멀지 않은 장래에 메시아가 출현할 것이라고 예언했고, 그의 세례를 받은 나사렛 사람 예수가 복음을 전파하자 많은 민중이 그를 따랐다.
하지만 바리새파가 보기에 예수는 위험인물이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기에 유대인과 이방인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았는지의 여부’다. 바로 이 구분과 증거가 율법과 할례였다. 유대인에게 율법과 할례는 그들의 정체성이자 종교요 목숨이었다. 하지만 예수는 율법과 할례 없이도 그를 통해 하나님을 믿고 회개하면 누구나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복음을 전파한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벽을 허물고 기독교가 세계 보편의 종교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을 마련한 셈이다. 이로써 하나님이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닌 모든 인류의 하나님이 되신 것이다.
○예수를 십자가의 죽음으로 내몰다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람들은 예수가 세리, 창녀, 나병환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비판했다. 당시에는 유대교의 ‘정결 제도’에 따라 병자나 죽은 사람, 피 흘리는 사람, 불의한 사람, 천한 사람 등을 피했는데, 그들이 부정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는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피하지 않았다. 그의 교제에는 창녀나 세리 등 당시 천시되던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었다. 계층 간 장벽도 허문 것이다.
고대 유대교 교리에 따르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사제의 축복을 받은 사람만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 장애인은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었다. 유대교에서는 장애가 죄 때문에 발생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는 병자와 장애인들의 병을 고쳐주고, 그들이 성전에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예수의 이런 행동은 종교적 공동체의 범위를 뛰어넘어 종족과 계층의 장벽을 깼다.
예수는 설혹 가난하고 무지하며 죄 많은 자라 하더라도, 인간은 하나님과 직접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히려 예수는 하나님의 응답은 율법에 대한 복종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깊은 인간에게 내려지는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 때문에 사람들은 계율을 지킨다는 것이다.
유대교 입장에서는 이는 잘못이었다. 왜냐하면 예수는 율법을 배제하면서, 다가올 최후의 심판 때 구제를 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율법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단언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율법을 부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선택을 받지 않은 이방인들이 자기들의 하나님을 함께 믿는다는 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복음을 전하는 예수를 자기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로 인정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었다. 그들은 율법과 관습이 깨져 나가는 것을 그대로 방치할 수가 없었다. 유대교 신앙공동체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유대인들은 예수를 배척하고 박해했다. 결국 예수를 십자가의 죽음으로 내몰았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저녁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졌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한복음 6:53~55) 그 뒤 이 말씀은 가톨릭 미사의식의 요체가 되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빌라도에게 아우성치면서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마태복음27:25)라고 외쳤다. 예수는 끌려가면서 뒤따라오는 무리들과 여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누가복음23:28).
유월절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형을 당하게 함으로써 무죄한 피를 흘리게 한 대가는 참으로 엄청난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이러한 행동이 훗날 후손들에게 얼마나 지난한 고통의 역사를 가져다줄지 당시에는 미처 몰랐다.
○정치범으로 처형된 예수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해졌다는 사실은 그가 정치범이었다는 뜻이다. 로마인들은 정치범에 한해 십자가형을 집행했기 때문이다. 로마인은 유대인의 저항과 반란이 잦아 한시도 그들에 대해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특히 갈릴리는 무력 봉기로 로마를 물리치려는 열심당의 본거지이자, 민란이 잦은 곳이라 경계의 대상이었다. 이런 형편에서 예수는 대규모 집회를 인도하고, 나귀를 타고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입성하는 등 민중을 선동해 소요를 일으킬 가능성이 농후한 사람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로마 관리들이 예수를 처형했다고 보는 게 역사적 순리다.
그러나 당시 복음서 저자들은 유대인에 대한 적대감으로, 로마인은 단지 유대인 등쌀 때문에 할 수 없이 예수를 처형한 것처럼 기술했다. 복음서의 이러한 기술 방식은 지난 2천 년 동안 기독교인이 유대인을 미워하고 박해한 근거를 제공했다.
○예수 부활로 그리스도교 탄생하다
예수 사건은 십자가 처형에서 막을 내리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를 부활시켰다. 제자들은 수시로 부활한 예수를 목격했다. 겁에 질려 예수를 세 번씩이나 부정했던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예수 부활을 눈으로 직접 보고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예수의 부활이 점차로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그리고 집요하게 믿어졌다. 마침내 서기 30년 오순절, 예루살렘에 순례 온 제자들이 그리스도교를 창 교했다. 예수는 이단자가 아니라 메시아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예수를 직접 따라다닌 제자들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하나님 계획의 ‘새로운 계약’의 증거로 믿었다. 이로써 각 개인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과 새로운 계약을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이산 을 예언한 예수
성경에 ‘이방인의 때’라는 표현이 있다. 예수는 유대인의 이산을 예언했다. 예수는 유대인들에 대해 말하기를,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누가복음21:24)고 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의 운명에 관해 예언하기를,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이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로마서11:25)고 했다. 그리고 이어 정해진 기간 동안에 모든 이방인들이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는 날에는 이스라엘도 그 완고한 마음을 버리고 구원을 받게 되리라고 말했다. 이 말은 충분한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일 때까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두 구절을 종합하면 ‘이방인의 때’라는 표현은 이방 세계에서 그리스도 복음이 충분히 확산될 때까지를 가리킨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예수에 대한 증언
교회가 세워진 지 7년만인 서기 37년에 태어난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의 책 《유대인 고대사》에서 예수의 역사성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이 시대에 예수라고 불리는 현인이 있었다. 그의 행실은 선했고, 그의 학식은 뛰어났다. 그리고 유대인들과 다른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제자가 되었다. 빌라도는 그를 정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도록 했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예수가 죽은 지 삼 일만에 그들에게 나타났고, 그가 살아났다고 보도했다. 따라서 그는 아마도 선지자들이 놀라움으로 자세하게 말했던 메시아였을 것이다. 이른바 그의 이름을 따서 그리스도인으로 불렸던 족속은 오늘날까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유대인 요세푸스는 원래 갈릴리 총사령관이었으나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에게 사로잡혀 유대군 사기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해 민족 반역자로 낙인찍힌 자였다. 그러나 그가 기록한 《유대 전쟁사》와 《유대 고대사》는 가치 있는 역사 저술서이다.
○예수를 신의 아들로 인정치 않는 유대교와 이슬람교
이러한 예수에 대해 유대교는 《탈무드》 〈산헤드린〉에서 “예수는 마술을 써서 이스라엘을 미혹시켜 배교하게 했으므로 유월절 전날에 처형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유대교에서는 예수를 신의 아들,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지체로 보지 않는다.
예수를 ‘이샤’라고 부르는 이슬람교도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예수를 신의 아들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사실과 기적을 행한 사실은 믿는다. 무슬림들은 예수를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기 위해 신이 보낸 중요한 예언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존경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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