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관계 사진

안효근 장모님 효열비 제막식

히요근 2011. 5. 15. 00:07

孺人仁川李氏孝烈碑

황금이 제아무리 귀하다 한들 땅속에 묻혀 있으면 귀한 줄을 모르고 무릇 사람이 남다른 선행을 해도 알아 줄이 없으면 어찌 어질다 하리요 그러나

여기에 옛 열녀에 못지않은 이 가 있으니 장흥읍 월평마을 선비인천씨 공도공 후손洙殷의 따님妙禮이시다. 1922년에 세상에 나시니 얼굴이 빈곳 없이 맑아 예쁘시고 조백이 훌륭한 집안에서 자라 여자의 도리를 잘 익혀 부모에 순종함으로 효녀라 하더니 나이 스물에 평택씨 관해공 후손漢成의 아들東培와 혼인하여 그 집에 화목을 이루는 맏며느리로써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며 시부모님께 효양하고 사랑하는 남편과 금슬이 좋았는데 꼬마둥이 아들이며 핏덩어리 딸을 얻은 후로 어려운 시국에 남편을 잃은 슬픈 사연이 발생하여 그 때가 여사의 나이 27세로 하루아침에 청상과부가 되시었다. 얼마나 슬픔에 잠겼을까 날벼락 같은 혼비백산 처절함이 눈으로는 볼 수없고 목매 자결하고자 하나 이웃들의 만류로 대성통곡 하는데 아이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귀에 들려 나둥그러진 애들이 불쌍하고 시부모님의 자식 잃은 애통함을 보니 죽기를 거두고 실신 하신 시부모님을 도리어 붙잡아 일으키며 저 어린핏덩어리를 키워 내리라 다짐 하였으나 닥치는 것은 살얼음 같은 두려운 청상과부의 앞날 이었다. 주위의 시선이 늘 개가의 주문과 여자의 마음을 설레게 함을 참아 낼 때 미아리 단장은 간절한 사랑의 노래이지만 그보다 더 처절함은 위아래 식구들의 가정을 가진 어른으로서 견디기 힘든 나날이 아니든가 밤이면 문을 걸어 잠그고 칼을 곁에 감추는 세월하며 남의 셋방살이 낮이면 논밭에 나가 일하고 모시길쌈 모시 베 짜기 주야로 가세를 일구던 중 시아버지 먼저 돌아가심에 못내 서러워 예절 따라 후히 장사하고 조석으로 상식곡이 처량하시었다. 이어 거동이 불편하신 시모님을 25년이나 모시는데 오순도순 같은 방에서 의논 좋게 지내니 이웃들 모두 세상에 드믄 효부라 하고 아이들을 곱게 키워 성혼 하니 내 마음을 고쳐먹었으면 이리 되겠느냐 하시고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하고 열녀는 두 지아비를 두지 않는 것이 옛 성인의 말씀이어 늘 어쩌다 내가 그리 된 것 같다 하시며 살아온 말씀을 할 때는 듣는 이 마다 눈시울이 뜨거웠다. 시어머님 먼저 향년 77세 나이로 별세하여 이 소문이 퍼지니 고을 선비들이 모두 천양 하였다. 향교와 군수의 표창을 받아 간직한 효자 永黙이 내개 장문을 가져와 글을 청하므로 망설이다 구구절절 험한 고비를 제대로 그리지 못하고 이같이 그렸으나 이비를 보시는 이여 우러러 보소서

서기2011년辛卯四月成均館典儀 竹山安澤根 삼가 지음

                              不肖子 永 黙 삼가 세움

 

 

 안효근 장모님 유인 인천이씨 이묘례 여사(1922년생-1999년영면77세) 효열비 제막식에 처남 임영묵 선생의 인사말씀 사진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