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이름이 왜 대한민국인가? 환단고기에서 퍼옴
최영열 기자승인 2019.05.06
한국unity-liberty연구소 지경진 소장
198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70주년을 맞아 4월 13일을 기념일로 정하고 해마다 보훈처가 기념식을 거행해왔다.
그런데 올해 2019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현 정부는 “임시정부 수립일은 4월 11일이라는 게 역사적 사실에 근접하며 4월 13일을 정부 수립이 완성된 날로 보는 것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 날짜를 변경했다. (4월 11일은 임정수립일이고 13일은 그것을 대외 선포한 날로 알고 있었는데…)
한국인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동심원을 그리며 한 만년 동안 한 여름 한 겨울 이기며, 한 솥에서 밥은 한식으로 먹고, 옷은 한복으로 입고 집은 한옥에서 살며, 긴 한 세월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한글이라는 세계명품을 만들었고, 아프면 한약으로, 병나면 한방으로 치료하며, 한 핏줄 한 겨레를 이으며, 한 마당에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한데 어울려 한 배달의 자손으로 한 평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한을 극복해온 한 민족이다.
이처럼 한국인들에게 ‘한’은 ‘크다, 밝다, 최고, 하늘, 하나’의 뜻이 함축돼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이름을 미국과 중국, 일본처럼 ‘한국’이라 하면 될 것 같은데 왜 ‘대한민국’이 됐는가.
1948년 우리나라 정부를 수립할 때, 나라 이름을 정하는 문제에 대해 제헌 의원들의 고민이 많았다. (1안) 고려, (2안) 조선, (3안) 한국, (4안) 대한민국 등이 검토됐다.
그중 ‘대한민국’은 ①제국주의적 냄새가 나고, ②나라 이름에 나라 ‘國’이라는 이중 명칭이 들어가고, ③비슷한 이름 대한제국은 한번 망한 나라이며, ④‘대'와 '한'은 같은 의미로 중복돼 있으므로 가장 소수 의견이었다.
그럼에도 결국 제4안 대한민국으로 결정된 이유는 바로 국권 상실 기간에도 한국인은 독립 의지가 강했고, 임시정부가 있었으므로 그 법통을 계승해야 하며, 그것이 민족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는 뜻에서였다.
국권 상실 중이었던 1919년 3월 1일 범국민적 독립운동이 있었고, 4월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했는데, 그 법통을 계승하자는 제헌의원들의 의견이 헌법 전문에 채택됐기 때문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 국민은 3.1운동으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우리나라는 반만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민족이지만, 전란과 민란, 전쟁, 침략의 수난을 많이 겪은 나라이다. 동아시아 대륙사에서 몽고족과 말갈족, 거란족, 여진족, 서하족, 돌궐족 등 북방 민족들은 한 시대를 풍미(風靡)하였지만, 지금 역사의 주 무대에서 거의 사라졌다.
그 가운데 한국인은 그 많은 수난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았고, 고유한 언어와 문자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참으로 생존력 이 강한 민족이다. 그 강한 생명력으로 현재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과 문화 강국, 스포츠 강국으로 성장한 자랑스러운 나라가 됐다.
그러나 과거 국가 구성의 3요소 가운데 하나인 영토와 주권이 빼앗겨 이웃나라에게 국권이 침탈당하고 인권이 유린된 아픈 역사가 있었다. 1945년 일본으로부터 해방됐지만, 하나의 국가로 독립하지 못했고, 새로운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국론이 분열돼 의견의 합의(Unity)를 이루지 못했으며, 남북이 갈라져 3년간 미군과 소련군의 통치를 받았다.
남측은 UN의 지원으로 1948년 5월 10일 우리 역사상 최초의 총선거를 실시해 제헌의원을 선출했고, 8월 15일 드디어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해 UN의 승인을 받았다.
그 당시 사회주의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은 무력 전쟁을 통한 세계 적화 야욕을 노골화했고, 세계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미국은 자유주의 민주주의 종주국을 자처하며 지구촌 곳곳에서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이때 우리 대한민국이 사회주의 편이 아닌 자유주의 편에 서게 됨으로서 지금과 같은 풍요를 누리게 되었으니, 그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른다면 그 국민들은 천벌을 받게 될 것이다.
해방 후 미군정 당시 우리 사회 곳곳에 사회주의 추종 세력이 많았지만 이승만 박사를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세력이 결집해 자유민주주의 국가 미국과 소통하며 공산화를 막을 수 있었다. 지금 남한이 북한보다 모든 면에서 행복할 수 있는 초석이 된 것이 바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선택이었다.
비록 초대 대통령으로서 장기 집권하려 한 흠결이 있지만, 6.25 전쟁 당시 전 국토의 공산화 일보 직전에 미국과 UN의 신속한 지원을 이끌어 왔으며, 한반도 전체의 공산화를 막을 수 있었다. 이것은 아무리 공산화 통일을 원하는 남측 좌파세력들이 인정하기 싫어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이다.
그럼에도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허용하는 자유대한민국에서 어떤 학자는 그분의 시신을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고 막말하고 있고, 그것을 공영 KBS에서 방영하고 있으며, 이러한 거짓 선동에 개념 없이 동조해 버리는 좌파 지식인들이 많으니, 도대체 나라가 어느 방향으로 가게 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당시 우리가 자유주의 편이 아닌 소련편이 되어 사회주의 국가로 통일되지 못해 억울하다는 뜻인가..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들이 문재인을 선택한 것은 다수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 특정인들 중심의 정치적 의사를 결정하는 보수 정권의 실패에 기인한 것이다. 새 정부에 소통과 합리적 진보를 통한 국가 발전을 기대한 것이지 사회주의화 정책으로 일관하며 자유시장경제에 활력을 막고, 국민 경제가 성장을 멈추고,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보다 사회주의 국가와 더 가까이 하라고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고 본다.
국민들은 현 정부의 국가 안보와 경제 정책에서 ‘설마’하며 우려하고 있었는데, 안보 불감증에 빠진 백성들을 대상으로 해묵은 이념에 빠진 정책들을 남발하며 온갖 미사여구로 자화자찬하고 있으므로 우국(憂國)의 심정에 불을 지피게 된다.
한국인들은 안보와 경제가 잘 해결되기를 기대하면서 북한의 비핵화 문제와 경제 활성화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총체적 난국임을 느끼며 우려하고 있는데, 정부는 자신들을 지지하는 국민만 바라보고 자신들을 비판하는 모든 국민들은 청산 해야 할 적폐 세력으로 거칠게 몰아가고 있다.
대한민국을 사지로 몰아가는 줄 모르는 국민들만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그들의 맹신적 지지를 얻기 위한 독선을 지속하고 있다. 깨어있는 여론이 절실한 이때 아직도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는 언론만 살아있으니, 대한민국은 지금 ‘국가 운명 불감증’에 걸린 것 아닌가.
최영열 기자 cyy18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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